A 씨는 물리학 전공 학생이다. A 씨의 일과는 단순하다. 매일 아침 대학교까지 가서, 수업을 듣고, 방과 후에는 밴드 동아리에서 공연을 준비한다. 드럼을 친다. 학점은 만점에 수렴하고, 그는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다. 장학금이 매 학기 나오기 때문이다. 집은 유복하지는 않지만 따뜻한 가정이다.
A 씨의 학교는 연못이 있다. 연못은 이 학교의 명물이다. 버드나무가 운치 있고, 꽃이 가득하다. A 씨는 새내기 시절 선배들과 동기들과 어울려 연못에 구경을 간 적이 있지만, 잘 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연못에 얼굴을 비추면 수면에는 머리 긴 남자가 비친다. 여자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체격이 남자같았다. a씨는 홀린 듯 손을 뻗어 그것을 만질 뻔했는데, 연못으로 떨어지기 전에 복학한 고학번 선배가 구해주었다. 그리고 그 남자를 아무도 보지 못했다. 꺼림직한 느낌이 들어 연못에 가지 않는다.
A 씨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연못은 그런 행복의 요소에 방해되는 존재다. 그렇다면 배제한다. 상식적인 반응이다. A 씨는 술을 잘 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아무도 술을 먹이지 않는다. MT 때 이후로, 동기와 선배는 술을 빼앗아버렸다. 그는 바쁜 아버지와 함께 마신 적이 없다. 아버지는 고매한 성격으로, 빛나는 은테 안경이 멋지다. 어머니는 집에서 살림을 한다. a씨는 집에 들어가서, 동생들의 숙제를 봐주고, 저녁을 하고 빨래를 한다. 복작복작한 집이다. 그리고 A 씨에게 요즘 친한 남자 후배가 생겼다. A 씨는 공군을 다녀왔는데, 학교에 복학하여 친한 새내기가 생겨 마냥 기쁘다. 새내기와 함께 술을 마셨다. 술을 잘 하진 않지만, 친교의 의미로 마신 것이다. 누가 말리지도 못한 채 축제 때 잔디밭에서 소주를 반병 마시고, 그는 후배를 이끌고 신난 채로 학교를 돌아다닌다.
그리고 연못에 빠진다.
안절부절못하는 후배의 목소리가, 119를 부르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끝이 없는 복도가 있다. 복도에는 수많은 문이 있다. 두리번거린다. 한 남자가 그의 앞에 서 있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둘은 같이 걷는다. 어떤 사무직 직원이 그 둘을 부른다.
a씨를 이끄는 남자는 노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사무직 직원은 맹파탕을 마셨느냐 묻는다. 남자는 약간 망설이다 고개를 살짝 젓는다. 표정이 변한 사무직 직원이 그를 붙잡기 전에 재빨리 바로 옆에 있는 문을 연다. 그리고 a씨와 함께 별의 바다로 빠져버린다. a씨는 얼떨떨하다. 몸이 부유한다. 남자는 a씨에게 몇 가지를 묻는다. 사소한 것들이다. 좋아하는 음식, 취미, 되고 싶은 것 등. 어떤 것은 표정을 찡그리다가, 어떤 것에는 탄성을 표한다. a씨는 자기 이야기를 남자에게 말한다. 남자는 자기 이야기를 아낀다. 그러나 a씨는 추궁하지 않는다. 물어볼 수 없다. 그들은 계속 추락한다. 차가운 뺨에 자기 손을 대보더니 남자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준다. 빈말로 말해도 더럽다. 색은 바래고,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비단이다. 하지만 그는 호의를 거절하지 않는 인간이라 감사히 둘렀다. 수에 새겨진 것은 국화인가? 꽃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익숙한 몇 개를 댈 줄은 안다.
색이 바랜, 노란 비단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서야 알아챘다. 남자가 한쪽 팔이 없다는 것을. 몸이 움찔하고, 굳는다. 남자는 자신을 엉거주춤 안는다. 더 이상의 것은 필요치 않음을 아는 듯하다. 그렇다. 고맙다고 말한다. 내가? 왜? a씨는 고개를 젓고 감사를 표하는 대신 돌려보내달라고 말한다.
자기가 죽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거라고 말이다. 그의 태도는 숨길 수 없이 '아정함'이 드러나서 남자는 웃는다. 그리고, 한쪽 팔로 a씨를 밀어낸다. a씨는 그때, 강렬한 기시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남자는 밑으로 계속 추락하고, 자기는 위로 두둥실 떠오른다.
남자는 이제 하나의 점이 된다. a씨, 아니, 남희신은 눈을 감고 잠든다. 잠에서 깨면, 이 악몽에서도 깰 것이라고. 눈을 뜬다. 병원이다. 몇 가지의 간단한 검사를 받은 후, 퇴원 수속을 밟는다. 친한 후배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무슨 일이냐고 묻지만 남희신은 답하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집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플랫폼에 선다. 연못으로 가고 싶지도 않다. 그가 찻간으로 가기 위해 걷는다. 반대편에서 사람이 걸어온다. 그리고 지나친다. a씨는 뒤를 돌아본다. 길고 흰 도포 자락, 치렁치렁하게 내린 머리, 말액이 팔랑거린다.
남희신...이라고 a씨는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그러자 너무나 익숙한 모습의 남희신이, 고금을 껴안고ㅡa씨에게 웃는 낯으로 조용히 하라고, 검지손가락을 입에 올린다. 그는 걸어 나간다. 또한 그도 걸어 나간다. 그 정도의 접점이라면 충분하다. 남희신은 이번에도 또 늦어버렸지만.
(+ 재개발 지역이 공사중이라고, 초반에 일상을 살아가는 남희신에 대해서 서술할 때 끼워넣을 예정. 재개발 지역은 관음묘.+) 남희신이 금광요를 자유롭게 만들어내기 위해 무엇이든 했고, 그것은 상당부분 유효했지만, 남희신이 몇 번의 환생을 거치는, 오랜 시간이 흐르고서야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관음묘에서 남희신을 밀친 것처럼, 이번에도 금광요는 남희신을 밀쳤다. 익숙한 꽃이라고 생각했던 국화무늬는 국화가 아니라 금성설랑이다... 참고로 학교 연못에 앞에 심어져 있다. 연못에 비친 건 남희신 자신이다. 별 건 아니고, 자기의 본 모습을 더 잘 직시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남희신이 금광요를 그리워했던 기간만큼, 금광요 또한 남희신을 그리워할 수 있었다. 금광요는 기다렸다... 계속... 그리고 금광요 앞에서야 남희신은 a씨가 아니라 남희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를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던.
두 사람이 만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남희신의 바람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음. 그게 끝이다. 어떤 인간의 소망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 문에 떨어지고 금광요가 남희신을 위로 밀치고 자신은 낙하함으로써, 금광요는 다시 그 차원을 영원히 떠돌게 될 것이다. 상관 없다. 금광요는 자신이 남희신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다 전했다.
맹파탕은 환생을 하기 위한 약탕이다. 내하교에서 맹파가 건네준다. 사무직 직원은 맹파다.
고학번 선배는 섭명결, 후배는 섭회상이다. 또, 아버지는 청형군이고 어머니도 같다. 남씨 집안 차남은 남망기다.
마지막으로 기찻길에서 갈라졌던, 두 사람은 a씨가 아닌 남희신의 기억이다.
이제 a씨는 그저, a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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